『저 사람은 왜 저럴까?』에는 다섯 나라의 공기가 들어 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온 캐서린 맨스필드, 미국과 영국을 오간 헨리 제임스,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 프라하의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미국 세일럼의 너새니얼 호손. 태어난 곳도 시대도 조금씩 다르지만, 이들은 문학이라는 거대한 그물 안에서 흥미롭게 이어져 있습니다. 책 부록 「다섯 작가의 흥미로운 연결 고리」에서 다섯 장면을 골랐습니다.
1. 아버지의 친구, 그리고 그의 평전
헨리 제임스의 아버지 헨리 제임스 시니어는 너새니얼 호손과 친분이 있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아들 헨리 제임스가 호손을 주제로 한 최초의 본격 비평서 『호손』(1879)을 썼다는 점입니다.
제임스는 호손을 "미국이 낳은 가장 고귀한 문학적 영혼"이라 칭송하면서도, 그의 작품이 지닌 '미국적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선배를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넘어서려 했던 것이지요. 이 책으로 제임스는 비평가로서도 자신의 자리를 다졌습니다.
2. 뉴질랜드에서 온 '체호프의 딸'
캐서린 맨스필드는 "나의 스승은 오직 체호프뿐이다"라고 말할 만큼 체호프를 숭배했습니다. 당시 영국 문단은 그녀를 "영국의 체호프"라고 불렀지요. 맨스필드는 체호프의 편지를 읽으며 그의 '객관적 태도'를 자기 문체로 녹여 냈습니다.
이 책에서 맨스필드의 「미스 브릴」과 체호프의 「내기」를 이어 읽어 보세요. 인물을 판단하지 않고 지켜보는 시선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3. 세 거장을 앗아 간 병
체호프, 카프카, 맨스필드. 세 사람은 모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의사였던 체호프는 자신의 병을 비교적 담담하게 직시한 인물로 그려지고, 카프카는 병이 깊어지던 마지막 시기에도 원고 교정에 마음을 쏟았다고 전해집니다. 맨스필드는 요양지를 전전하며 글쓰기를 자신을 지탱하는 방식으로 붙들었습니다.
카프카의 「단식 예술가」가 바로 그 시기의 작품입니다. 1922년, 폐결핵이 악화되어 일을 쉬던 해에 쓰였지요. 굶는 것을 예술로 삼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몸이 점점 약해지던 작가의 손에서 나왔다는 걸 알고 읽으면 문장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4. 마지막 편집은 '태우기'
카프카가 죽기 전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원고를 모두 태워 달라고 당부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브로트는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고, 덕분에 우리는 『소송』과 『성』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런 마음은 카프카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맨스필드도 유언장에 가능한 한 많이 폐기해 달라는 취지의 당부를 남겼고, 남편 존 미들턴 머리는 오히려 원고를 보존해 출간했습니다. 헨리 제임스는 말년에 정원에서 서신과 문서 일부를 모닥불에 태웠고, 호손도 출판이 뜻대로 풀리지 않던 시절 초기 원고를 회수해 태웠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남기고 싶은 마음과 지우고 싶은 마음. 작가들은 자기 글 앞에서도 두 마음을 함께 품고 있었습니다.
5. 버지니아 울프로 이어지는 두 사람
헨리 제임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 집안과 인연이 있던 문인이었습니다. 훗날 울프는 제임스의 작품을 꾸준히 읽고 비평하며, 그의 정교한 심리 묘사와 문장 감각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한편 울프는 동시대의 맨스필드를 강하게 의식했습니다. 맨스필드의 글을 두고 "내가 유일하게 질투한 글"이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였지요. 제임스와 맨스필드는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울프라는 한 사람을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는 셈입니다.
연결 고리를 알고 읽으면
다섯 편의 단편은 각각 따로 읽어도 충분히 좋습니다. 하지만 작가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알고 나면, 한 권의 책이 하나의 대화처럼 읽히기 시작합니다. 제임스가 호손에게, 맨스필드가 체호프에게 건넨 시선이 책장 사이를 오가지요.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는 물음은 작가들 사이에도 오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물음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왔다는 것, 그것이 이 다섯 작가가 남긴 단편들의 공통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