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라드너. 우리나라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다. 그런데 미국에선 헤밍웨이가 어릴 적 그의 글을 흉내 내며 습작했고, 버지니아 울프가 감탄했고, 피츠제럴드와는 이웃이자 친구로 지낸 작가다.
야구장 기자석에서 시작된 작가
라드너는 1885년 미국 미시간에서 태어났다. 처음 직업은 소설가가 아니라 스포츠 기자였다. 지역 신문을 거쳐 『시카고 트리뷴』에서 야구 칼럼을 쓰며 이름을 알렸다. 선수들과 기차를 타고 원정을 따라다니며, 그들이 쓰는 말투와 허세와 엉터리 맞춤법까지 귀에 담았다.
그 귀가 라드너의 무기가 됐다. 1914년부터 잡지에 연재한 『유 노 미 앨』은 시골 출신 야구 선수가 고향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로만 이루어진 이야기다. 맞춤법은 엉망이고 자기 자랑은 끝이 없는데, 읽다 보면 이 사람이 스스로 모르는 자기 모습이 행간으로 다 드러난다. 사람들은 웃다가 문득 서늘해졌다. 버지니아 울프가 경탄한 책이 바로 이거다.
편지라는 형식이 하는 일
편지는 이상한 글이다. 쓰는 사람이 보여 주고 싶은 것만 골라 쓰는데, 그래서 오히려 감추고 싶은 게 더 잘 보인다. 자랑이 길어지면 불안이 보이고, 겸손이 지나치면 계산이 보인다. 라드너는 이 틈을 누구보다 잘 이용했다. 작가가 끼어들어 설명하지 않는다. 인물이 직접 쓴 편지만 늘어놓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차가운 게 좋은 사람들」
1921년에 발표된 「차가운 게 좋은 사람들」도 편지로만 된 단편이다.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여자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남자는 뉴욕에 가서 작곡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여자는 그런 남자를 응원하는 조신하고 현명한 마음을 편지마다 늘어놓는다.
처음엔 풋풋한 연애편지처럼 읽힌다. 그런데 몇 통 지나지 않아 묘한 게 보이기 시작한다. 남자는 자꾸 자기가 얼마나 잘나가는지 증명하려 하고, 여자는 자기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은근히 보여 주려 한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편지라기보다, 누가 더 위에 있는지 재는 줄다리기에 가깝다. 이 줄다리기가 어디로 가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길.
『왜 이런 마음이 들까?』는 이 단편에 '꺼드럭거리며 계산한다'는 말을 붙였다. 백 년 전 편지인데, 요즘 메시지 창에서 오가는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조금 뜨끔하다.
웃기면서 슬픈 사람
라드너는 사람들을 웃겼지만 정작 자신은 우울했다. 술을 많이 마셨고, 1926년 결핵 진단을 받은 뒤 요양지를 떠돌았다. 이웃이자 술친구였던 피츠제럴드는 훗날 소설 『밤은 부드러워라』 속 인물 에이브 노스에 라드너의 모습을 담았다. 라드너는 1933년, 마흔여덟에 세상을 떠났다.
라드너를 읽을 땐 웃음 뒤를 보면 된다. 인물이 크게 떠벌릴수록 그 사람이 감추고 싶은 게 뭔지 찾아보는 거다. 편지 한 통 한 통이 다 단서다.
라드너를 더 읽고 싶다면
「차가운 게 좋은 사람들」이 재밌었다면 「이발소에서」도 찾아 읽어 보길 권한다. 작은 마을 이발사가 손님에게 동네 이야기를 늘어놓는 독백으로만 된 단편이다. 처음엔 시골 이발소의 수다처럼 들리는데, 이야기가 끝나 갈 무렵 이발사가 웃으며 하는 말들이 전혀 다르게 들린다. 라드너가 인물의 입을 빌려 그 인물을 드러내는 방식이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작품이다. 편지든 독백이든, 라드너의 인물들은 자기 입으로 자기를 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