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읽기

"깜깜한 게 무서워" 하는 아이에게 — 그림자놀이로 어둠과 친해지기

불 끄면 무섭다는 아이에게 "무서운 거 없어"보다 먼저 해 줄 수 있는 것들. 어둠을 없애는 대신 어둠과 조금 친해지는 그림자놀이와 잠자리 이야기를 모았다.

2026년 10월 30일 · 읽는 데 3분 · 남우주

밤마다 불을 끄려고 하면 아이가 이불을 끌어당긴다. "엄마, 깜깜한 게 무서워." 이럴 때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은 아마 이거다. "무서운 거 하나도 없어. 얼른 자."

틀린 말은 아닌데, 아이한테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무서운 마음은 "없다"는 말로 사라지지 않으니까. 어른도 그렇지 않나.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고 걱정이 멈추진 않는다.

무서운 건 어둠이 아니라 모르는 것

아이가 어둠을 무서워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너 살 무렵부터 상상력이 쑥쑥 자라는데, 그 상상력이 깜깜한 방에서는 엉뚱한 쪽으로도 뻗어 나간다. 옷걸이에 걸린 외투가 사람처럼 보이고, 창밖 나뭇가지 소리가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가만 보면 아이가 무서워하는 건 어둠 그 자체가 아니라 어둠 속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둠을 없애 주기보다, 어둠을 조금 알게 해 주는 쪽이 더 오래 간다. 모르는 사이를 아는 사이로 바꿔 주는 거다.

먼저, 마음부터 받아 주기

  • "무섭구나. 깜깜하면 잘 안 보여서 그렇지?" 하고 마음을 먼저 말로 짚어 준다. 무서운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조금 편해진다.
  • 작은 수면등을 켜 둬도 괜찮다. 어둠과 친해지는 건 천천히 해도 된다.
  • "엄마 아빠도 어릴 때 무서웠어" 같은 이야기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그림자놀이, 어둠과 친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

그림자는 어둠이 빛과 함께 있을 때만 나타난다. 그래서 그림자놀이를 하다 보면 아이는 어둠이 꼭 무서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몸으로 알게 된다.

준비물은 손전등이나 스마트폰 불빛 하나, 그리고 하얀 벽이면 충분하다.

1. 방 불을 끄고 손전등을 벽 쪽으로 비춘다. 불빛과 벽 사이에 손을 넣으면 그림자가 생긴다. 2. 두 손을 엇갈려 엄지를 걸면 새, 주먹 쥔 손에서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세우면 여우가 된다. 처음엔 어른이 만들어 보이고, 다음엔 아이가 만든 그림자에 이름을 붙여 준다. 3. 손을 불빛 가까이 대면 그림자가 커지고, 벽 쪽으로 가져가면 작아진다. "그림자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네" 하고 같이 신기해하면 무서움이 슬그머니 호기심으로 바뀐다. 4. 마지막엔 그림자에게 "잘 자" 하고 인사하고 손전등을 끈다. 그림자는 사라진 게 아니라 잠든 거라고 말해 줘도 좋다.

낮에 미리 친해 두기

어둠과 친해지는 연습은 밤보다 낮에 시작하는 게 훨씬 쉽다. 무서운 마음이 생기기 전에, 놀이로 먼저 만나 두는 거다.

  • 이불 텐트. 식탁이나 의자 위에 이불을 덮어 작은 동굴을 만든다. 안은 어둑하지만 밖에서 엄마 아빠 목소리가 들리니 아이는 금세 신이 난다. 그 안에서 손전등을 켜고 책을 읽으면 어둠은 비밀 기지가 된다.
  • 어둑한 방 보물찾기. 커튼을 친 방에서 작은 장난감을 숨기고 찾게 한다. 어둠 속에서도 손으로 더듬고 귀로 들으면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 저녁 달 산책. 해 질 무렵 같이 나가서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지켜본다. 어둠이 갑자기 덮치는 게 아니라 천천히 내려온다는 걸 눈으로 보면, 밤이 조금 덜 낯설어진다.

무서움이 몇 주씩 이어져 잠을 거의 못 자거나 낮에도 불안해한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소아청소년과 선생님과 한번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다.

잠자리 이야기로 마무리하기

그림자놀이를 하고 나서 잠들기 전 그림책 한 권을 같이 읽으면, 어둠은 무서운 것에서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바뀐다.

그림책 〈달 아이〉에는 밤마다 금빛 실에 매달려 여행하는 달 아이와, 그 곁에 늘 있는 밤 아이가 나온다. 밤 아이는 무섭게 생겼지만 나쁜 아이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냥 달 아이를 신기하게 쳐다볼 뿐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노란 페이지인데, 손전등을 비추고 그 위에 손을 올리면 아이 손 그림자가 생긴다. 책 속 밤 아이가 아이 손끝에서 다시 나타나는 셈이다.

그 그림자를 보며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면 좋겠다. "봐, 너한테도 밤 아이가 있네. 늘 같이 다녔는데 몰랐지?"

어둠을 다 없애 줄 수는 없다. 대신 어둠 속에 무엇이 있는지 하나씩 알려 줄 수는 있다. 오늘 밤엔 그림자 하나부터.